[일본] 노무라 만사이와 오사카 G20
작성자
박유현
작성일
2024-02-12 23:23
조회
210
노무라 만사이와 오사카 G20
셀러브리티 중에서 일하면서 본 가장 유명인으로 아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정도를 들 수 있을까. VIP의 다자정상외교 행사에서 상당히 근접해서 보았으나 일이라 그런지 TV로 본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텐션이 높아서 그렇지 싶은데 정서 내지는 감각이 일상과 좀 다른 상태가 되는 듯하다. 그래도 출장 전 수행원 수첩을 읽으면서 딱 한번 보고 싶었던 행사가 있었으니 2019년의 ‘G20 오사카 정상회의 환영만찬.’ 우리나라에는 영화 ‘음양사’와 일본판 아가사 크리스티 드라마으로 잘 알려진 노무라 만사이(野村萬斎, 1966-)의 공연이 있었던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상회담이 아닌 문화 행사에 영어 통역사가 들어갈 이유가 없었고, 이 시간에 오사카성 가까운 호텔에서 TV로 중계되는 내용을 시청했다.
그런데, 이때 한국에서는 일부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VIP가 제국주의 옹호 발언을 한 초대 노무라 만사이의 후손 2대 만사이의 공연은 보러갔다는 글이 한참 돌았다. 번짓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이 초대 만사이(5대 만조-전통예능 종사자들에게는 후대에 이름을 물려주고 다른 이름을 쓰는 일이 흔히 있다)는 지금 현역인 2대 만사이의 증조부. 메이지 시대 사람이고, 러일전쟁, 청일전쟁, 1차대전 기간 내내 도쿄에 정착하려 애쓴, (지금이야 초 명문이지만 당시만 해도) 한미한 가문의 배우였는데 무슨 제국주의를 옹호했겠는가. 1, 2차대전 사이의 전간기(戰間期) 조선 방문을 했을 때도 ‘교겐의 대가 만사이 옹’이라는 말을 들었던 옛날 사람이다. 팩트와 거짓말을 적당히 섞어 이어 붙이는 픽서가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엮어내지 싶다.
지금의 2대 노무라 만사이도 제국주의의 반대 끝이다. 2018년의 NHK 다큐멘터리 ‘오키나 생명의 춤(Okina, Dance of Life)’에 잘 나와있지만, 한국에서도 인기 높은 음악가 고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1952-2023)와 함께 평화주의의 세계관을 공유한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인용한 글은 비슷한 시기 세계 평화, 진혼과 재생의 올림픽을 기원했던 도쿄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절의 대담. (번역은 필자) 질문자는 전통예술 금속공예 작가인 미야타 료헤이(宮田亮平) 문화청 장관이다. 이 도쿄올림픽은 노무라 만사이가 끝까지 끌고 갔다면 굉장한 작품이 되었겠지만, 중간에 틀어져 노무라 만사이는 그만두고 그 대신 일본 굴지의 광고대행사에서 기획한 괴작이 나왔다. 그렇지만 사퇴하기 전까지 2년 남짓의 준비기간 동안 본인의 예술철학을 풍부하게 영상으로 남겨서 공부가 된다. 아직 인간국보는 안 되었지만 옆나라의 보물은 틀림없어 보인다.
미야타 료헤이 x 노무라 만사이 대담
2018년 12월 20일 문화청 bunkachannel
미야타 료헤이 “런던도 그렇고, 최근의(2018년) 베이징 공연도 있었만 , 해외에서 본 일본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노무라 만사이 “글쎄요, 새삼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특히 저는 (문화청 연수제도로) 영국에 유학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극동(Far East)이라고 할까, 표현이 신경 쓰여서요. 즉, 그리니지 천문대를 0도라고 하면, 훨씬 더 먼 곳, 동경 몇 십도입니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극동’이에요. 그 정도로의 동과 서의 거리감이라는 것을 이렇게 말하는 거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것을 연결하는 것이 유라시아 대륙이고, 실크로드라는 것이 바로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연극의 최고봉은 아마도 그리스의 비극일 텐데, 연극 문화라는 것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동서로, 실크로드를 통해 발전한 것일지도 모르겠고, 가면 문화에 관해서는 동쪽으로 가는 거죠. 그리고 물론 그 도중에 가면 문화, 이탈리아 같은 곳에서도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라는 가면극이 있고, 한반도에도 조금은 남아 있고, 그리고 발리 섬 같은 곳에는 또 다른 문화가 있지요.
그런 식으로, 아마 그리스에서 흘러들어온 것이 일본이라는 극동, 뭐 막 다른 곳에 왔을 거에요. 그런 곳에 와서, 즉, 그 전까지는 통과(through)해 버리는 것 같지만, 일본은 그 다음이 바다니까 거기서 막히면, 뭐, 표현이 좀 그렇지만, 쌓이는 것이죠. 그것이 빛나게 되어 일본 고유의 문화로 이렇게 변하는, 예를 들어 가면이라는 것을 하나 들어봐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죠.
그래서 대륙은 정복당한, 피정복의, 여러 가지가 있어서, 여러 민족이 이렇게 있어서 마치 지층처럼, 그 전의 민족 문화가 이렇게 묻혀 가는데, 일본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천황이 있고, 그림자 속에 쇼군이 있고, 여러 가지, 귀족이 있고, 쇼군이 있고, 이렇게 슬라이드 하면서, 이렇게 보자면 스다레(공간을 나누기 위해 쓰는 ‘발’) 문화로 이전을 부정하지 않고, 어쨌든 이렇게 남아있기 때문에, 가가쿠(궁중음악-아악)도 있고, 노가쿠(노와 교겐)도 있고, 조루리(인형국-분라쿠)도 있고, 가부키도 있고, 다카라즈카(여성가극단)이라든가, 신극(현대 연극)이라든가, 이전을 부정하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거에요.
보통 같았으면, 귀족이 없어졌으니 가가쿠(아악)은 그만두라든가, 무가 문화의 노가쿠(노와 교겐)은 뭐라든가 해서 없애버렸을 텐데, 없애지 않고 그 좋은 점을 취해서, 교겐 속에 가가쿠(아악)의 장점도 들어오고, 그래서 어느 시대에는 가부키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 가부키는 노가쿠의 장점만 가져와서 다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편곡해서 지금까지는 고급예술(high art)이었던 것을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로 바꾼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뭐랄까요, 이전을 부정하지 않고 슬라이드하듯 공존해 가는 것도 일본이 가진 하나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이 일률적으로 모든 것을 끝내고 새로시작하는 것과는 다른, 뭔가 다양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아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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