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래향’과 1975년 자민당 의원단 방북
작성자
박유현
작성일
2024-07-11 01:26
조회
181

야래향과 1975년 자민당 의원단 방북
이번에 뉴진스 하니의 ‘푸른 산호초’ 공연 영상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한국인 중년의 기억 속의 ‘푸른 산호초’는 1980년의 마츠다 세이코 버전이 아니라, 같은 노래이긴 하지만 1995년 제작되고 1999년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 삽입된 형태의 감성에 해당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기억 속에 있는 ‘야래향’은 이향란의 2차대전 시기 원곡 버전이 아니고, 대만 가수 등려군(Teresa Teng)이 70년대에 부른 버전일 것으로 본다. 등려군을 보고 큰 세대가 문근영 버전의 ‘야래향’(2007년 영화 ‘댄서의 순정’ 삽입곡)을 만들었듯, ‘러브레터’를 보고 큰 세대가 하니 버전의 ‘푸른 산호초’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야래향’ 원곡을 부른 야마구치 요시코는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인 가수 이향란으로 살다가 전후에 일본으로 돌아간 귀환자(引揚者, 히키아게샤)이다. 영어로 식민지(colony)의 어원은 ‘정착지를 식립하다’는 표현에서 온 것인데, 그 식민지에서 귀환하는 사람을 일본어로는 난파선 끌어올리듯 인양(引揚)한 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흥미롭다. 야마구치 요시코는 달콤한 노래로 중국인의 마음을 녹여 전의를 잃게 한 혐의로 반역죄로 전범재판에 회부되었는데, 일본 국적이 확인되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고 한다.

중국 쪽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일본인들는 이런 2세 재조 일본인들을 조센코(朝鮮子)라고 불렀다. 조선에서 태어나서 크고, 평생 조선에 살 줄 알았는데 패전과 함께 거의 맨몸으로 귀국하게 되어 고생이 많았다고. 그도 그럴 것이, 단번에 귀국한게 아니고 2년 정도 걸려서 조금씩 돌아갔는데 총독부의 고위관리, 대기업 직원 가족 등은 알아서 먼저 귀국해 버린 경우가 많았고, 남아있던 상인, 교사 가족 등은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고. 귀환선에 간신히 타게 되었을 때는, 약간의 돈과 양손에 든 짐 만큼만 가지고 승선할 수 있었다. 이 귀환자들은 일본 인구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여서, 안 그래도 어렵던 시절 기존에 있던 사람들의 부담이 가중되었기 때문에 박해가 심했다고 한다.

이 야마구치 요시코가 종전 46주년과 태평양전쟁 개전 50주년을 기념한 1991년 ‘테츠코의 방’ 특집 방송에 출연한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테츠코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동화책 ‘창가의 토토’ 저자 구로야나기 테츠코를 말하는데, 90세를 넘긴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2회로 나누에 진행된 이 토크쇼의 시청 소감은, 야마구치 요시코는 다사다난한 가운데, 차별에 반대하는 신념을 가지고 난민, 아파르트헤이트 등에 관심을 가졌던, 선량하고 진지한 정치인으로 보인다는 것. 어떻게 보면 만주국의 슬로건 '오족협화'를 진심으로 믿고 실천했던 사람이다. 참의원 외교위원장까지 지냈으니 가벼운 위치는 아니었던 것으로.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있어서 정계은퇴 후 아시아여성기금 부위원장을 맡았을 것이다.

야마구치 요시코는 1975년 자민당 의원 방북단에 포함되기도 했는데 영상을 보니 북한과의 협의로 얼굴을 노출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 그래도 당시 김일성의 환대를 받은 것 같고, 1979년에는 모 언론사의 김일성 단독 인터뷰도 성사시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박사논문을 쓸 때 세금제도를 철폐한 1974년 전후로 여러 자료를 읽었는데, 이 방북단 관련 일화는 여러 매체에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이중 야마구치 요시코가 북한을 재방문했을 때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를 배워와서 김일성 앞에서 직접 불렀다는 일화가 있었는데, 진위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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