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구소칼럼

[한국] 모국어 원칙 Mother Tongue Principle

작성자
박유현
작성일
2020-01-11 19:54
조회
1405


<모국어 원칙 mother tongue principle> 통역계는 크게 두 가지 세계로 나뉜다. <모국어로 전달해야 잘한다>와 <모국어로 들어야 잘한다>. 여기서 <그거야 사람 나름이지> 하면 일반인이다. 또는 회색분자. 사실 모국어 원칙은 냉전 질서와 깊은 관계가 있는데, 미국이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당시 다국적 재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IBM 장비를 써서 영·불·러·독어를 동시로 통역하되, 외국어를 듣고 모국어로 전한다, 가 당시 책임자였던 아이젠하워의 전 통역관이 정한 방법이다.

반면 <모국어로 들어야 잘한다>는 소련식 원칙이다. 이건 식민지 철도 노선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모든 노선이 경성으로 집결되고 지방과 지방은 잘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모든 언어는 마더 러시아의 언어를 매개로 소통하고, 연방국 언어 간에는 그다지 소통할 일이 없다. 의외인 것은 역사적으로 처음 실행된 <본격적> 다국어 동시통역은 전후 독일이 아닌 소련에서 있었다는 점. 1935년 파블로프 Ivan Pavlov 박사가 기조연설자로 나선 제15차 국제생리학회 총회에서 러시아어가 영불독어로 통역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후 질서가 국제기구를 낳고 국제기구 중심의 시장이 국제회의 통역사를 낳은 것은 맞지만, 이런 시장은 몇 개 되지 않는다. 한국을 포함한 대다수의 나라는 두 개 언어 그중에서도 영어와 자국어 간의 양방향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는 교육자들은 모국어로 통역해야 잘한다고 가르치지만 현장에서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국제회의 통역의 정점에 있는 정상 외교 통역을 생각해보면 된다. 정상의 발언을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처럼) 귀화인 통역관이 모국어로 통역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한국 시장은 방법론적으로는 프랑스에서 배워와서, 작동 방식은 일본을 따라가며, 언어적으로는 영어가 압도하는 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안 맞는 서구이론을 버리고 망해버린 소비에트 이론을 받아들이기에는 엉거주춤, 한 상태라고 보면 될까.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라며 냉소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은 다시 말하지만 일반인이나 회색분자. 자기 직업에 <학> 자를 붙이고 목숨을 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진 오른쪽은 아이젠하워, 왼쪽은 통역관 리온 도스터트 Leon Dostert 조지타운대 교수. 이름에서 짐작되듯 귀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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