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카데미 시상식 자막 생중계
작성자
박유현
작성일
2020-02-13 17:30
조회
1407

요즘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많기 때문에, 원음의 목소리를 통역으로 덮는 것보다는 자막을 깔아 주는 것이 더 좋은 중계 방식으로 보인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TV 조선이 자막 생중계를 했는데, 이것은 사실 동시통역사-속기사의 릴레이 중계이다. 흔한 방식은 아니지만, 예컨대 규모가 큰 회의장에서 무료 강연을 진행하는 경우 사용한다. 직접 했던 자막 생중계 방식의 회의로는 슬라보이 지제크 Slavoj Zizek 의 경희대학교 강연을 들 수 있는데, 당시 청중이 3,500명이었다고 한다. 이럴 경우 동시통역을 제공하면 헤드셋이 1인당 2천원, 합 7백만원이 되고, 나중에 통역기를 회수하기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고안된 방식이 2인 1조의 속기사를 투입해서 동시통역을 받아써서 자막으로 올리는 것인데, 최근 들어 방송국에서 이 방식을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직접 해보면 속기사들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100을 말하면 100을 전달한다>의 자세를 가지고 임하기 때문에 풀 스피드로 통역하는 편인데 그걸 거의 다 받아쓰는 것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번 TV조선의 경우 속도가 안 되는 통역사들이 일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통역사를 양성할 때 보면 속도를 못 내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이건 선생도 마찬가지) 그래서 징검다리 건너듯 한 문장 건너 1-3-5로 가면서 딜레이 되는 자막이 나온 것으로 본다. 속기사는 보통의 속도에서는 놓치는 부분이 없고 딜레이도 거의 내지 않는다. 따라서 저 아웃풋은 통역사의 속도 문제이다. 그렇다면 속도가 만능일까? 동시통역이라는 것은 일단 커버리지를 높이기로 하면 완전할 수가 없다. 빨리하다 보면 중간중간 문법이나 발음이 깨지게 된다. 속기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씀. "어"하는 군말 filler 까지 받아쓰는 속기사도 본 적이 있다. 물론 오역도 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오역은 깨닫는대로 정정하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옆에서 잡아줄 파트너가 더욱 중요하다.
이번 시상식 보면서 새삼 느낀 점. 전후에 명성을 날렸으며 유럽 통역계의 대부인 어떤 통역사는 "동시 통역은 인간을 익명화, 기계화시키는 일이고, 가장 높은 수준의 통역은 순차 통역"이라고 주장했다. 동시통역은 기술적 허들이 있기 때문에 일단 통대에 입학을 해야 능력치를 가늠할 수 있지만, 순차 통역은 순수한 재능의 세계라는 점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전에도 썼지만 좋은 통역사는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다. 샤론 최 감독은 훌륭한 통역사이지만 종종 그렇듯 <더 나은 일>을 할 것으로, 안현모 MC는 배유정 배우의 뒤를 잇는 다재다능한 셀러브리티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음번 북미 정상회담은 자막 생중계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단, 속도가 높은 팀을 구성해서.
출처: 박유현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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