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구소칼럼

[한국]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1978년 경

작성자
박유현
작성일
2019-10-04 00:10
조회
1362
동시통역의 역사는 군사회의의 역사이다. 동시통역 자체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때 효율적인 회의 진행을 위해서 고안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 있었던 시도는 본격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 2010년 리모델링 전의 유엔총회 회의장에는 그 때 쓰인 것으로 주장되는 Philips 시스템이 있었는데, 사실 뉘른베르크 재판은 IBM 시스템을 썼기 때문에 그건 과장이지만 상당히 낡은 기계였다. (사진을 찍어오고 싶었지만 차마...)

외대 통역대학원이 만들어진 것이 1979년인데, 당시 큰 국제회의를 유치하게 되서 부랴부랴 외대 교수들을 해외에 연수보내서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설이 갈리는데 1983년 제80차 국제의회연맹(IPU) 총회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고, 1985년의 IMF-IBRD 합동회의 때문에 그랬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둘다 파일럿 테스트 였던 것으로 보이고 본질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면서 얼른 통역요원을 양성해야 한다는 군부정권의 결정때문 일 것이다. 다시 여기서 공직자 원로들의 진술이 엇갈리는데, 박정희 정부에서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고 박종규 대한체육회장이 주도했다는 설과, 전두환이 주도했다는 설이 있다.

한편 시진 속의 흰 제복 차림의 저 군인은 워런 햄 (Warren C. Hamm Jr.) 미 해군소장인데 판문점 군사정전위 회의 모습이다. 햄 소장이 1977-79년 군정위 대표를 지냈으니까 저 때는 통역대학원이 없던 시절이 확실한데 군 내부 인력으로 동시통역이 가능했다. 사실 국제회의통역사는 군 회의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1) 해보니 여성 통역사들이 남자들의 세계를 잘 모르는 것 같고 (군 만의 특수용어가 워낙 많다), 더 중요하게는 (2) 군에는 양질의 인력이 계속 공급되서 그럴 것이다. 통역장교들은 1년을 가르쳐서 2년을 실무에 투입하는 시스템이고, 현역 장성들의 말에 따르면 만족스럽게 잘 굴러간다고 한다.

 

전체 3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0
[미국] 동시통역의 선구자 리온 도스터트 (Leon Dostert, 1904-1971)
박유현 | 2020.02.14 | 추천 0 | 조회 1450
박유현 2020.02.14 0 1450
9
[한국] 아카데미 시상식 자막 생중계
박유현 | 2020.02.13 | 추천 0 | 조회 1407
박유현 2020.02.13 0 1407
8
[한국] 모국어 원칙 Mother Tongue Principle
박유현 | 2020.01.11 | 추천 0 | 조회 1404
박유현 2020.01.11 0 1404
7
[유럽] 통역사가 주인공, 영화 샤레이드 Charade, 1963년
박유현 | 2019.10.04 | 추천 0 | 조회 1862
박유현 2019.10.04 0 1862
6
[유럽] 제네바정치회담, 1954년
박유현 | 2019.10.04 | 추천 0 | 조회 1487
박유현 2019.10.04 0 1487
5
[한국] 군사정전위원회 회의, 1978년 경
박유현 | 2019.10.04 | 추천 0 | 조회 1362
박유현 2019.10.04 0 1362
4
[한국] 최초의 동시통역, 1961년
박유현 | 2019.10.03 | 추천 0 | 조회 1444
박유현 2019.10.03 0 1444
3
[유럽] 동시통역의 맹아: 국제연맹 (1926)
박유현 | 2019.10.03 | 추천 0 | 조회 1310
박유현 2019.10.03 0 1310
2
[중국] 주은래의 번역 공작 16자 방침
박유현 | 2014.01.31 | 추천 0 | 조회 1344
박유현 2014.01.31 0 1344
1
[목차] 칼럼 목차
박유현 | 2010.10.07 | 추천 0 | 조회 1285
박유현 2010.10.07 0 1285